누군가 그랬다 한다.
신을 믿어야 허까. 아니면 믿지 않아도 될까. ?
게임이론적 선택을 하다면 신을 믿어야 하는 게 덜 손해보는 방법이란 것이다.
만약 (전능하고 전지한 그리고 심판하는)신이 있는데 믿지 않을 경우 죽어서 신 앞에 섯을 때 난처해진다 한다.
신의 존재를 일단 믿어서 그에 대한 자세로 살았을 경우 죽어서 신어 없다는 것을 확인 해도 별 손해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만 할까?
쓸데 없이 신을 믿는 데 낭비한 시간과 노력은 많은 부분을 헛으로 한 것이 된다.
또한 보이지 않은 위험에 미리 굴복하여 의존한 자기 결정하나 못하는 영장이라는 것을 포기한 것이 무엇인가에 의존해야만 만족하는 인간으로서 나약함이 더 커보일 수 있다. 성경해석도 때론 인간 마음 안에 신이 있다고도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살아서 낭비(어쩌면 보험일 수 있다)없는 삶을 선택할 까? 살아서 피조물이라는 고정비(보험료)를 지불하고 죽어서 보험 급여를 받는 쪽을 선택할까? 물론 내재적으로 초월하는 것도 있으나 이 것은 외재적으로 초월된 신을 설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기억이라는 것을 보태서 생각해보자.
죽어서 내가 아주 성실하게 납부한 신에 대한 충성(보험료)을 죽어서도 기억하는 것과 죽어서는 원래 생명을 가진 것 안에 한시적으로 있는 생명현상으로 존재해서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할 때,
또 신이 심판하는 신일 줄 알았는 데 막상 죽어서 가 보니 심판을 하지 않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신이었을 때(인간 레벨에서 하는 일은 신의 입장에서 도덕을 들이댈 만한 가치도 없을 만큼 미미하거나 가치준이 다를 때(이데롤로기는 인간의 가치일 뿐이다. 시공간을 분리할 수 없듯이 생명현상 안의 영혼은 육체안에서 분리할 수 없다.) 등등등 ...
ㅎㅎㅎ~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을 바라보는 시선을 또 하나 갖는다. 메타 생각 즉 기억을 동반한 제 3의 시선을 현행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보태서 갖을 수 있는 게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것을 신이 주어서 외재적으로 초월된 것이 내 안으로 오는 것이 아닌, 내가 감당하는 내재적 초월의 방향을 갖고 있다. 나는 ...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랑 안으로 투입되어야 한다. 이것이 즉 실행이 먼저일 것이다.
여기에 사랑하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보는 메타인지 시선을 갖는 게, 투입되면서도 매몰되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등동물에 기준한다면 잉여적으로 너무 많이 갖고 있는 인간의 기억(두뇌)능력 때문에 가능하다. 메타인지 즉 관념능력(추상능력)이다. 여기서 영혼이 나온다.
빅데이타에서도 많으면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창발현상이라고도 하기도 하고, 원래 요소 안에 조금씩 있는데 많아지고 모이면서 일정 임계를 넘으면 생기는 정상적이 위상변화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무득 이런 생각도 든다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원래 생명의 유한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는 거라고... 그래서 이럴 땐 생각을 내려놓아야 겸허해진다고....
넘쳐야 알아지는 것이지만, 모지라야 투입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것을 거꾸로 알면 조진다는 것을 .
이 영화를 보고 기억에 대한
인간의 기억능력이 생산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 다른 곳으로 점프하여 부풀어진 커피의 한 잔 ...
극장 : 은평구립도서관에서 DVD로,,, 공짜 치고 아주 괜찮은 영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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